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은
가톨릭 신자는 물론 일반인들도 한 번쯤은 꼭 걷고 싶어하는 길이죠.
그런데 42일 동안 이 순례길을 걸으며
웨딩마치를 올린 부부가 있습니다.
이지혜 기자가 취재했습니다.
화려한 웨딩드레스도, 고가의 결혼반지도 없었습니다.
잘 차려입은 하객과 주례자도 없었습니다.
등산복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배낭을 멘 부부 앞에는
아득하고도 아름다운 길만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습니다.
오랜 세월 수많은 순례자의 발걸음이 다져진
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42일간 걸으며 결혼식을 올린
정현우, 이혜민 커플입니다.
두 사람은 지난 3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
세상에서 가장 긴 900km 웨딩마치를 올렸습니다.
<아내 이혜민씨>
“평범한 결혼식보다는 저희한테 의미가 있고, 즐겁게 준비할 수 있는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서 생각을 하던 와중에 , 남편의 버킷리스트였던 순례자의 길 이야기를 들었어요. 산티아고 순례길을 결혼식 대신에 걸어보면 어떨까… 나는 면사포를 쓰고, 너는 나비넥타이를 메고 걸으면 어떨까…”
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긴 결혼행진을 위해 양가 부모를 설득했습니다.
웹디자인과 그래픽디자인 편집일을 했던 부부는 직장까지 그만뒀습니다.
2년의 준비과정을 거쳐 스페인으로 떠났지만, 시작부터 난관이었습니다.
피레네 산맥에서 끝이 안 보이는 길을 비바람을 맞으며
걷고 또 걸었습니다.
꽃길만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,
잦은 폭우와 질퍽해진 진흙길은 몸을 무겁게 했습니다.
그러나 순례길을 걸으며 다양한 순례자를 만났고,
이들은 두 사람에계 주례를 해주기도, 축가를 불러주기도 했습니다.
<남편 정현우씨>
“어떤 스님은 저희한테 좋은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저희에게는 주례사 같은 말씀을 해주셨고, 자연주의 음악가를 만났는데 그 음악가에게 저희 소개를 하니깐 자연주의 음악가가 그럼 너희를 위해서 축가를 하나 만들어서 연주해도 되겠냐고 해서, 축가연주도 듣기도 하고, 프로포즈 때는 주변의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프로포즈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.”
새의 지저귐과 비온 후 하늘에 뜬 무지개,
밤하늘의 쏟아지는 별을 보며 두 사람은 사랑을 약속했습니다.
아내가 체력이 달려 발목과 무릎에 통증을 호소하며 주저앉기도 했지만
두 사람은 그럴수록 지혜와 인내, 용기를 달라고 기도 했습니다.
<아내 이혜민씨>
“아득한 900km 길이었는데 하루에 20,30km를 걷다보니, 어느새 도착을 하게 됐잖아요. 물론 그 과정은 힘들었지만. 약간 생각이 조금 더 여유로워졌어요. 조금씩 방향을 잃지만 않고 가다보면, 우리가 꿈꾸던 일들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어요.”
결혼 행진 과정을 페이스북(facebook.com/900km)을 통해 공유한 부부는
한국으로 돌아와 순례길 이야기를 담은 책
‘세상에서 가장 긴 결혼행진’ 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.
책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마음속에 간직한 꿈과 용기가 빛을 보기를
바라는 마음을 담을 계획입니다.
PBC 뉴스 이지혭니다.